보도자료

[보도자료 중국CCTV4]중국 70주년 뉴스(내용중 위동항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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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지원실 2019.10.15.

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방영한 특집뉴스에서 당사를 소개한 내용입니다.

(10월 3일 12시 35분 중국CCTV4 뉴스, 하단링크 참조)

 

https://youtu.be/KmvnuXUARbk

 

 

 

<본문내용>


▣ 방송 내용


~00:26(아나운서)


 1990 9 16, 한국 인천항을 출발한 카페리선 1척이 산동 웨이하이에 접안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국의 첫번째 한중무역 해상루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의 첫번째 연해개방도시로서의 웨이하이는 생태건설 및 경제발전에 있어 자신만의 우수한 노선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70, 신시대 쟁취  산동 웨이하이로 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00:44(기자)


일요일 아침 9, 산동성 웨이하이항에 위동항운의 NEW GOLDEN BRIDGE VII호가 정시 도착하여 여객과 화물을 내리고 있습니다.


제 뒤쪽이 NEW GOLDEN BRIDGE VII호입니다. 이 선박은 작년 9월에 첫 취항하여 중국 웨이하이와 한국 인천을 왕복 운항하고 있습니다. 이 선박의 전신은 1990년에 중한간 첫번째 해상통로인 GOLDEN BRIDGE 입니다.




~ 00:51(이동녕 부사장 인터뷰(해변))


저 높은 건물의 뒤쪽이 바로 위해 구()터미널의 위치입니다. 당사의 첫번째   선박인 GOLDEN BRIDGE 호는 바로 저 위치에 접안 했었습니다.

 


~ 01:08(나레이션)


1988년부터 이동녕 씨는 중한간 민간통항 사전기획팀에 소속되었고 1990 8월에 중한 합작회사가 성립되었습니다. 9월에 GOLDEN BRIDGE호는 한국 인천에서 기항하여 익일 웨이하이에 도착하였으며 이로써 중한간 교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 01:32 (이동녕 부사장 인터뷰(사무실))


선박이 천천히 웨이하이항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그때의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 배를 GOLDEN BRIDGE 라고 명명하였는데 중한 양국을 잇는 우의의 다리라는 의미였습니다. 당시 중한간 무역은 80년대 말 기준 한자리수였습니다. 이후에 3,000억불을 돌파하였으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국이 되었습니다.



~ 01:43(나레이션)


웨이하이와 한국간 가장 근접한 지역간 직선거리는 93마일에 불과합니다. 1992년 중한 수교 후 중국의 첫번째 연해지역 개방도시가 된 웨이하이는 중한간 무역의 최일선 교두보가 되었습니다.



~ 02:08 (조서복(刁瑞福) 위해시 상무국 조사연구원 인터뷰)


금년 1월부터 8월까지 (웨이하이의) 대 한국무역액은 RMB308억으로서 웨이하이 수출입무역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하나의 통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산동 항만을 경유하여 들어오는 화장품, 식품, 일용품과 같은 상품의 2/3가 웨이하이 항만을 통해 수입되고 있습니다.

 


~ 02:31 (나레이션)


오늘과 같이 한중FTA를 기초로 웨이하이는 현재 한중자유무역구 지방경제합작 시범구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진행하는 등 중한간 새로운 페이지를 쓰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웨이하이는 세계무대에서 다시 한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2003 10, 웨이하이시는 거주 및 도시환경에 있어 특출난 공헌으로 2003년도 U.N의 거주상을 획득합니다.

 


~ 02:45 (총위동(叢衛東) )위해시 외사판공실 부주임/)위해시 정협 항오대교(港澳臺僑,홍콩/마카오/대만/화교)와 민족종교 외사판공위원회 주임)


이 사진이 바로 U.N의 거주상 수여식입니다. 당시 사회자가 중국 위해시정부를 선포하였으며, 뒤에 착석해 있던 우리는 매우 기쁘고 감동했었습니다.

 


~ 03:00 (나레이션)


총위동 씨는 웨이하이시 외사판공실 부주임으로 대표단 중 한명으로 참석했었습니다.


신 중국 수립 후 웨이하이시는 옌타이시 관할에 속했었습니다. 1987년 웨이하이는 지급시(地級市, ()가 시() 및 각종 유형의 현급 행정구를 관할하는 체제)로 승격되었으며, 이후 거주상을 받게 될때까지 15년간, 웨이하이의 발전은 모두가 다 인정하는 수준이었습니다.


 


~ 03:17 총위동(叢衛東) )위해시 외사판공실 부주임/)위해시 정협 항오대교(港澳臺僑,홍콩/마카오/대만/화교)와 민족종교 외사판공위원회 주임)


제가 8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웨이하이로 돌아왔을 때에, 지금의 웨이하이 공원인 저쪽의 해변은 모두 다 흙길이었습니다. 당시의 웨이하이는 여전히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만, 지금 보시다시피 우리 시의 해빈공원(公園)은 기본적으로 웨이하이의 1,000km의 해안선의 공원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 03:27 (기자)


많은 도시들은 끊임없이 그 규모를 확대하고 성장하지만 웨이하이는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재확대를 지양하고 정교함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교함이라는 단어는 도시의 모든 지역에 존재하여 행복감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 03:39(나레이션)


유공도 및 그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해빈공원 두 지역은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웨이하이도 이를 기초로 하여 더욱 정교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 03:57왕로명(王魯明), 위해시위원회 서기)


도시의 정교화(精致城市)”는 제가 이해하기로는 구도심의 개조, 신환, 업그레이드 및 새로운 건설에서의 계획, 건설, 관리에 있어 정교함, 세밀함, 높은 품질 등을 제고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 04:09 (나레이션)


현재의 웨이하이를 천천히 돌아보았습니다. 60여개소에 설치된 공원들이 거리나 거주지 입구에 있었습니다. 2020년까지 공원수는 140여개소로 확대할 예정입니다.


 


~ 04:28 (시민 인터뷰)


집에서 매우 가깝고, 아래쪽 지역 모두가 공동구역입니다. 노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기에도 편리합니다. 운동이나 산책 모두 좋은 편입니다.


공동구역에는 우리를 위한 많은 헬스기구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공간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매우 즐겁게 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 (나레이션)


70년동안 웨이하이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개방, 경제, 행복의 세계 일류거주도시로 점차 발전해 왔습니다. 이 해변 도시는 지속적인 고품질의 도시건설과 함께 생태건설도 병행하여 모든이의 행복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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